1. 에리히 잘로몬
에리히 잘로몬은 1886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습니다. 잘로몬은 1906년부터 동물학과 공학을 공부했고 뮌헨과 베를린에서 법을 전공했습니다. 1914년부터 4년 동안 독일 국방군에서 복무하며 전쟁 포로로 붙잡혔고 프랑스 수용소에서 한동안 통역사 및 대변인으로 일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증권거래소와 피아노 공장에서 일했고 오토바이를 임대하는 사업체를 만들어 운영했습니다. 1926년 그는 울스타인 출판사의 홍보를 맡게 되어 광고를 계획하게 되면서 사진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잘로몬은 1928년 카메라를 숨긴 채 베를린 법운에서 재판 중인 살인범의 사진을 촬영했고 이 시리즈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사진이 매체에 실리게 되면서 잘로몬은 출판사에서 나와 사진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법률을 전공하고 한 때 변호사로 일하기도 했던 잘로몬은 자신이 자주 접했던 법조계 인사들과 외교관들을 촬영했고 국제회의에 초청되어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잘로몬은 <베를리너 일루스트리르테 차이퉁>, <포춘>, <라이프>, <데일리 텔레그래프>와 같은 여러 매체와 일했고 울스타인과 함께 협업하기도 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로 이주하여 사진 경력을 계속 이어나갔으나 1943년 나치에게 발각되었고 유대인이었던 잘로몬은 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1944년 잘로몬과 그의 아내, 아들은 폴란드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되었습니다.
2. 정치보도사진의 창시자
잘로몬은 커다란 렌즈가 달린 에르마녹스 카메라와 고감도 유리 원판을 사용했습니다. 덕분에 현장에서 플래시를 촬영하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잘로몬의 사진 속 인물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듯, 혹은 카메라를 인식하지 못한 듯 자연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잘로몬은 눈에 띄지 않게 현장에 녹아들어 상황을 살폈고 예리한 관찰로 장면을 담아냈습니다. 현장에서 쫓겨나지 않는 게 더 힘든 일이라고 말한 그는 어두운 실내조명을 배경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정확히 포착하는 어려움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순간포착의 연속으로 그는 포즈를 취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았고 캔디드 포토의 창시자라고 소개됩니다.
3. 현장의 분위기
■Immertreu Trial
1929년 재판장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과 현장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사진입니다.
1. 아우구스트 잔더
아우구스트 잔더는 1876년 독일 헤르도르프에서 태어났습니다. 잔더는 광부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부터 광산에서 일했습니다. 1896년 군에 소집되어 복무를 마치고 난 후 그는 1901년부터 1902년까지 드레스덴에서 회화를 공부했습니다. 광산의 풍경을 촬영하러 온 사진가 슈멕의 일을 도와주다가 사진을 처음 접했는데 이후 자신의 예술적 기량과 드레스덴에서 공부한 회화를 사진과 접목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898년부터 1899년까지 베를린, 라이프치히, 할레, 드레스덴 등 지역의 사진 업체에서 일하고 여행을 이어나가며 사진을 계속했습니다. 1902년 잔더는 린츠로 이주하여 그라이프 스튜디오에서 근무했습니다. 1904년 자신만의 예술사진과 회화 작업을 하고자 아우구스트 잔더 스튜디오를 오픈했고 1909년부터 쾰른으로 돌아가 스튜디오를 마련하여 <20세기의 사람들>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 잔더는 아들의 정치활동으로 인해 나치와 마찰을 겪었고 쾰른 지역의 풍경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1944년 공습으로 인해 그의 스튜디오가 파괴되었고 이로 인해 잔더는 쿠흐하우젠으로 작업실을 옮겨 작업을 이어나갔습니다. 1951년 포토키나에서 잔더의 작품이 전시되었으며 옛 쾰른을 촬영한 사진이 쾰른 시립미술관에 소장되었습니다. 1958년 잔더는 독일사진협회의 명예회원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잔더는 1964년 독일 쾰른에서 사망하였고 15년이 지난 1980년 그의 아들에 의해 사진집 <20세기 사람들>이 출간되었습니다.
2. 환경 속의 인물
잔더는 동시대의 많은 인물들을 사회적인 그룹에 따라 나누어 촬영하였습니다. 1910년 즈음 시작된 초상사진은 1930년 동안 2500점이 넘게 촬영되었습니다. 잔더는 이러한 사진을 모아 1929년 사진집 <우리 시대의 얼굴>을 출간했고 <독일의 국토, 독일의 민중> 연작을 발표했습니다. 잔더의 인물 사진은 사진이 예술 매체로 인정받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의 체계적인 접근법은 개념미술의 초기 사례로 인정받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20세기 사진작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잔더는 초상사진을 통해 거대한 사회구조 속에 놓인 인간상을 파악하려고 했으며 모델은 인격에 어울리는 환경 속에서 인물의 자연스러움이 표현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잔더의 사진을 유형학적 사진으로 칭하기도 하는데 사회적 부류를 주제로 인물들을 분류하여 거의 정면을 바라보는 비슷한 형식으로 작업했기 때문입니다. 잔더는 화가 프란츠 빌렐름 자이바르트와 친한 사이였고 그의 사회주의 예술론에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잔더는 우리 시대에 전적으로 충실한 역사 이미지를 위해 사진보다 나은 도구는 없다고 보았고 진실된 모습을 후세에 물려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3. 유형학적 인물사진
■Jungbauern
젊은 농부라는 제목의 이 사진은 직업과 같은 사회적인 카테고리로 나누어 촬영한 잔더의 대표적인 사진작업물 중 하나입니다. 잔더의 다른 인물사진과 마찬가지로 정면이나 약간의 측면을 향한 몸과 정면을 바라보는 인물의 시선이 잘 드러나는 사진입니다.
'사진 > 사진작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ugene Smith, 휴머니스트 종군사진작가 (0) | 2022.07.19 |
---|---|
Sawada Kyoichi, Sawatari Hajime 일본의 포토그래퍼 (0) | 2022.07.15 |
László Moholy-Nagy, Lucia Schulz 바우하우스의 기록 (0) | 2022.07.11 |
Arnold Newman, 환경 초상사진 (0) | 2022.07.05 |
Dorothea Lange, 대공황의 기록 (0) | 2022.06.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