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볼스
볼스는 1913년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볼스의 본명은 알프레드 오토 볼프강 슐츠이며 추상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볼스의 아버지는 유명한 예술가와 친분이 있는 공무원이자 예술 후원자였습니다. 1919년 볼스와 그의 가족은 베를린에서 드레스덴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1924년에 볼스는 스틸 카메라를 선물 받았습니다. 1930년 볼스는 베를린 응용 미술 학교인 라이만 슐레에서 사진을 시작했습니다. 학교를 그만둔 볼스는 19931년 사진가 겐자 조나스의 스튜디오에서 일했고 1932년 파리로 이사를 했습니다. 파리에 이주한 이후 볼스는 우울한 환경에서 돈도 없이 불법적인 거주를 이어나갔고 때문에 스스로를 노숙자라고 말했습니다. 1933년 이후 바르셀로나, 이비자 등으로 옮겨 다니며 택시기사, 독일어 교사 등으로 일하던 볼스는 다시 파리로 돌아왔고 1936년 프랑스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페르낭 레제의 도움을 받아 공식적으로 파리에서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허가받았습니다. 1937년 즈음부터 볼스는 사진 작업에 몰두했으며 세계 박람회에서 전시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때 랑방 하우스의 책임자가 볼프강 슐츠에게 전보를 보냈는데 그의 이름 일부가 삭제되어 볼스로 기재되었고 슐츠는 그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우아함의 파빌리온'에서 전시되었던 사진들을 책으로 출간했는데 이때 볼스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고 계속해서 볼스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볼스는 막스 에른스트와 자크 프레베르 등 당시 파리의 유명 예술가 및 유명인사들과 친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볼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때 억류되기도 했는데 탈출 후 마르세유 근처에 숨어서 그림을 그리며 지냈습니다. 1942년 볼스는 독일군을 피해 몬테리마르로 피신했으며 전쟁이 진행 중인 시간 동안 미국으로 이주하려 했습니다. 1945년 르네 드루앙 갤러리에서 첫 수채화 전시회를 가졌으며 2년 후 두 번째 전시회를 열어 이름을 알렸습니다. 주로 형이상적인 추상화를 전시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볼스는 더욱 회화와 드로잉에 몰두했습니다. 1940년 말 볼스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으며 1951년 파리의 한 호텔에서 식중독으로 사망했습니다. 두 차례의 전시회 활동과 함께 볼스의 죽음 이후 그의 회화작품들이 더욱 알려졌으나 그의 사진작품들은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진 매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인식이 다양해지면서 볼스의 사진 작업도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2. 볼스의 사진과 그림
볼스는 사람들을 다양한 자세로 촬영하였고 때로는 같은 사람을 피사체로 하여 스물네 차례 이상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니콜 브라우벤의 사진은 40여 장의 사진을 촬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볼스는 사진작가로서 새로운 기법을 발명하거나 자신만의 이론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효과를 주거나 카메라에 대한 설정 및 세부 묘사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볼스의 사진은 다른 사진작가가 그렇듯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는데 그 장면들은 담담하고 냉정한 외로운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파리라는 도시의 풍경과 거리를 촬영한 사진 속에는 텅 빈 거리와 노숙자, 가파른 계단과 보도블록 등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볼스의 인물 사진에서 피사체들은 보통 눈을 감고 있고 팔이나 손, 발 등 신체의 일부만이 묘사됩니다. 볼스는 무기물에 기묘한 애착을 보였다고 하며 정물 사진에서 이러한 특징이 잘 보입니다. 배수로 안에 놓인 망가진 인형이나 죽은 새를 촬영한 사진에서 볼스의 심리적 집착을 엿볼 수 있습니다. 볼스의 사진에 담긴 대상은 현실 세계에 있는 흔한 요소들이지만 일부는 분위기나 구도, 그리고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피사체 등을 통해 볼스의 심리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볼스는 사진 매체를 악용하거나 사진이 가진 순수성을 해치지 않았으며 현실을 조작하지도 않았습니다.
볼스의 작품을 출간한 인물 중 하나인 에발트 라트케는 볼스와 그의 사진을 두고 '이질적이고 서로 다른 부류의 오브제들을 모순적인 환경에 배치했고 그 결과 오브제들은 각각의 개별성을 잃고 새로운 독립체로 결합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볼스는 우연은 위대한 대가이며 사실상 우연은 뜻밖에 일어난 일이 아닌 신이 만들어낸 우주의 조수라고 말하며 우연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볼스의 그림 작업은 에칭과 얼룩을 주로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를 사용한 자유롭고 즉흥적인 표현과 교육이나 참조에 얽매이지 않은 볼스 만의 신선하고 창의적인 표현이 특징적입니다. 이 때문에 볼스는 1940~1950년대에 널리 알려진 프랑스 양식의 추상회화 이념인 타시즘(Tachisme) 운동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평가됩니다.
자신만의 뜻을 내포한 피사체를 발견하고 이를 렌즈에 담아낸 볼스는 그림 또한 즉흥적인 표현과 얼룩을 통해 캔버스에 우연을 묘사합니다. 이러한 볼스의 사진과 그림 작업의 경향으로 인해 볼스는 초현실주의, 타시즘, 서정적 추상주의 등의 선구자로 불립니다.
3. 무기물에 대한 조용한 묘사
■Puppe und Auster im Rinnstein
도랑 속의 인형과 굴이라는 제목의 이 사진은 제목 그대로 도랑에 버려진 작은 인형과 굴 껍데기를 촬영한 사진입니다. 우연히 발견된 피사체를 무심한 듯한 시선으로 담은 이 사진은 보기 아름답거나 편한 구도에서 벗어나 특정한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습니다.
■Kaninchen mit Kamm und Mundharmonika
빗과 하모니카가 있는 토끼라는 제목의 이 사진은 빗과 하모니카 그리고 토끼의 사체로 보이는 피사체가 놓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볼스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체를 가까이 배치하여 새로운 구성의 오브제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대상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나 공간과 물체의 일반적인 관계 탈피 등의 효과를 불러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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